イェダりんの“リベルテ”を探して!

雨宮処凛さんのコラムマガ9学校のゲストとしてもお馴染みのイェダりんことイ・イェダさんの連載コラムが、フランスから届きました! 果たして「亡命者」の日々は、楽しいのか? 大変なのか? そのリアルな生活を綴ってもらいます。コラムは、ハングルも同時併記していく予定です。
*ちなみにリベルテ(liberté)とは、フランス語で「自由」。フランス共和国の標語である「自由、平等、友愛」(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の一つであり、その起源はフランス革命にあります。

(その6)

パリを襲ったテロ。
私たちはどこへ進むべきか

国連人権委員会による勧告

 国連人権委員会による、韓国政府の普遍的・定期的審査のためにジュネーブの国連事務局に行ってきた。多くの韓国の市民活動家たち、NGOの人たちが韓国の人権の状況を伝え、私も兵役拒否権について発言した。審査の前、兵役拒否権について詳しく説明させてくれるよう頼むために委員の人たちに会いに行ったが、関心のある委員たちは現在の韓国の状況について私が説明する必要がないほどよく把握していた。
 審査後、韓国政府に兵役拒否権についての勧告が下された。もちろん(追加事項を除き)勧告はこれまでも何度か下されていたが、依然、韓国の状況は改善されていない。しかし、兵役拒否権が国際基準に依拠した人権であることが、今回の勧告であらためて認められたといえるだろう。

パリでのテロとフランスの選択

 「パリでテロが起きた!」
 国連から戻りしばらく経った2015年11月13日金曜日の夜、仕事を終えたあとに知人からメールを受け取った。帰宅すると、エマニュエル先生が友人、知人に安否を確かめる電話をかけていた。雰囲気が尋常ではなかった。
 テロが起きた夜9時ごろ、私は仕事中だった。具体的な事件の状況を把握し、私も周辺の知人らに連絡をいれた。14日に参加するはずだった日本の集団的自衛権反対、沖縄辺野古基地問題、済州島海軍基地問題などを話し合うパリ定期集会も、フランスの国家非常事態のせいで取り消された。パリ自体がそれほど広くない都市なので、自分もテロの被害者になりえたかもしれないという思いに背筋がぞっとして怖かった。ただ運がよくて生き残ったのだという思い、被害者の方々とその家族、知人らを傷つけるかもしれないという思いから、SNSのように公開された空間では「知人が生きていてよかった」と書きこむこともできなかった。
 テロから2日後、事件現場に行き哀悼の意を表した。政府は当分外出を自制するよう訴え、現場周辺のメトロは封鎖され、パリ全域に恐怖心がしみわたっていた(実際に、ただの破裂音を銃声と間違えて、たくさんの人びとが悲鳴をあげて訳もわからないまま逃げ惑うのを目撃した)にもかかわらず、多くの人びとが祈りをささげに訪れていた。
 それとは別に、シリアのラッカに空爆を行ったフランスの選択には反対する。テロによって亡くなった人たちに対する哀悼と同様に、いま戦争のせいで死んでいく人々、毎日のようにテロのような惨状に苦しむ人々に思いをはせ、そのせいで過激主義者らが生まれていることを理解し、根本的な問題を解決するべきではないだろうか。

集会の自由を奪われたフランス

 フランスでは当初2週間の予定だった国家非常事態宣言が3カ月に延長されるとともに、公式的には集会の自由もなくなり、集会形式で空爆に異議を唱えるのが難しくなった。
 実際に、NPA(反資本主義新党)は集会禁止令にもかかわらず空爆反対の集会を開いて罰金を科され、収監を甘受している。気候変動枠組条約の締約国会議期間中、それに関連する重要な集会が開かれる日である11月29日、同じ日にレピュブリック広場で集会の自由を取り戻すための集会を開いたところ、開始後一時間もせず、機動隊により、文字通り掃討されてしまった。久しぶりに故郷の香りを感じ、悲しくなってしまった。

書類を必要とする様々な行政手続きが遅いことで有名なフランスの機動警察の素早く完璧な対応

 実際に集会に参加し、私も警察に一発殴られた(悪態をつかれながら…)。集会で機動隊を見たときは怖かった。2メートルは優にありそうな筋肉質のガタイと山賊のような顔が怖かったこともあるが、「第二国民」として、つまり移民としての怯えの部分も大きかった。
 テロ以降、移住民、難民など、国籍に関する政策は外国人らに不利に作用しており、実際に地方選挙の一次投票では、極右政党であり難民と移住民に排他的な国民戦線(FN)が高い得票率を獲得した。しかしこんなときほど、無差別シリア・イラク空襲に反対し、根本的な解決のために熟考する必要があると思う。機動隊は怖いしテロは怖いけれど、テロを起こした過激主義者が生まれる原因を考えるべきである。これまで中東問題に干渉し派兵してきた国家、そしてその国に居住する人々にも、少しずつ責任がある。内戦国に暮らす人たちは、私が感じるこのテロの恐怖よりもっと深刻な恐怖を感じているだろう。
 フランスの空爆に反対する。このデモは不法だといいながら、集会の自由を認めない韓国のような状況にならないことを望みながら、集会禁止令にも反対する。
(※11月末以降、現在はふたたび集会可能)

「ペク・ナムギさんの快復を祈ります。in Paris」2015年11月14日、ソウルで、労働権やさまざまな少数者の人権などのための民衆総決起集会があった。そんななか、農民ペク・ナムギさんは散水車の放水を受け意識を失って入院中。警察はデモ隊に10気圧以上の水圧で放射した。民間の散水車業者は、安全上の理由から最大でも6気圧ほどを使うという

 集団的自衛権に反対する集会に参加し警察に拘束された日本の人々、声をあげるための集会で警察から強硬に鎮圧される韓国の人々、国家非常事態下の安全保障のために自由を制限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フランスの人々――民主主義の破壊という深刻な事態の前で、国境を越え、ともに進むべき方向があるように思う。

UN

한국정부 인권 정기심의를 위해 제네바의 UN에 다녀왔다. 많은 한국 시민활동가들, NGO단체들도 방문하여 한국의 인권상황을 알리고 나도 병역거부권에 대해 발언했다. 심의가 시작하기 전, 병역거부권에 대해 잘 설명해주도록 부탁하기 위해위원들을 만나러 갔는데 관심 있는 위원들은 현재 한국 상황에 대해 내가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심의 결과, 한국 정부에게 병역거부권에 대한 권고가 내려졌다. 물론 (추가된 부분을 제외하고) 수차례 내려졌던 권고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병역거부권이 국제기준에 근거한 인권라는게 또 한 번 인정된 셈이기도 하다.

파리 테러, 프랑스 공습

“파리에서 테러가 있었대!”. UN에서 돌아와 얼마 후 인 13일 금요일 밤 퇴근한 후 지인에게 받은 문자였다. 귀가를 하니 Emmanuelle 선생님이 주변 친구,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고 있었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내가 가게에서 일하고 있을 때인 9시즈음 테러가 일어났다.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 보고나서 나도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을 시작했다. 14일에 참가하려던 일본 집단자위권반대, 오키나와 헤노코 기지 문제, 제주도 해군기지 문제 등을 이야기하는 파리 정기 집회도 프랑스 국가비상사태 때문에 취소 되었다. 파리는 그다지 넓지 않은 도시이므로 테러의 피해자가 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고 무서웠다. 단지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또한 피해자들과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SNS 처럼 공개된 공간에서는 지인들이 살아남아 다행이란 말 할 수도 없었다. 테러 2일 후 사건현장에 들러 애도를 표하고 왔다. 정부의 당분간 외출을 자제하라는 말과 사건 현장 근처의 메트로가 닫혀있고 또한 파리 전역에 깔린 공포심(실제로 총기가 아닌 파열음을 총소리로 착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영문도 모른 채 달려 도망가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러 왔다.
그것과는 별개로 시리아 락까에 공습을 한 프랑스의 선택에 반대한다. 테러에 의해 죽은 사람들에 대한 애도와 마찬가지로 지금 전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 매일 같이 테러와 같은 참상을 겪는 사람들 그것 때문에 생기는 극단주의자들을 이해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하지 않을까.

비상사태

프랑스내의 국가비상사태는 당초 2주간 예정이었던것이 3개월로 늘어남과 함께 집회의 자유도 공식적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집회형식으로 공습에 이의제기를 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실제로 NPA (반 자본주의 신당)은 실제로 집회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공습반대등의 집회를 벌여 벌금을 물고 감옥행을 감수하고 있다. 세계기후협약 기간 동안 그것에 관련해 준비 된 커다란 집회날인 11월 29일, République에서 같은 날에 그것과는 별개인 집회의 자유를 찾기 위한 집회도 준비되었는데, 집회 시작 후 1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특공대에 의해 문자 그대로 청소를 당했다. 오랜만의 고향의 향기(?)를 느끼며 슬퍼졌다.

서류나 여러행정절차가 느리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기동경찰의 빠르고 완벽한 대응

실제로 집회에 참여하다가 나도 경찰에게 청소를 당하며 한대 맞았다(…욕까지 들어가며) 집회에서 기동대를 보고 무서웠다. 기동대의 2m쯤은 가뿐히 보이는 키의 근육질과 산적 같은 얼굴(…)이 무서운 것도 있지만 제 2국민으로써, 이민자로써 겁나는 것도 크다. 테러 이후 이주민, 난민, 국적에 관한 정책이 외국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려는 중이고, 실제로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극우정당이며 난민과 이주민에게 배타적인 국민전선(FN)이 높은 득표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런 때 일수록 무차별 시리아,이라크 공습에 반대하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동대가 무섭고 테러가 무섭지만 테러를 일으킨 극단주의자가 생긴 원인을 고민하고 그간 중동문제에 간섭을 하며 파병을 한 국가들, 그리고 그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책임이 있다. 내가 느끼는 이 테러의 공포보다 극심한 것을 내전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은 더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프랑스의 공습에 반대한다. 불법시위 합법시위하며 사람들에게 집회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 되지 않길 바라며 집회금지령에도 반대한다. (*11월말 후 현재는 다시 집회 가능)

“백남기님의 쾌유를 바랍니다 in paris”. 2015년 11월 14일에서는 노동권, 각종 소수자의 인권 등을 위한 민중총궐기 집회가 있었다. 그러던 중 농민 백남기 씨가 살수차의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중. 경찰이 이번 시위에서 시위대에 직사할 때 10기압 이상으로 쐈는데 민간 살수차 업체에서는 안전상의 이유로 최대 6기압 정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집단자위권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하다가 경찰에 구속된 일본사람들,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간 집회에서 경찰에 의해 강경진압을 당하는 한국사람들, 국가비상상태에 의해 자유를 안보에 내 맡겨야하는 프랑스사람들. 민주주의 파괴라는 큰 틀에서 국경을 넘어서 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翻訳:金 成河/鄭 康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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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の6) パリを襲ったテロ。私たちはどこへ進むべきか」 に1件のコメント

  1. magazine9 より:

    国の緊急事態を理由に、さまざまな市民の自由が奪われる事態は日本でも起こり得ること。自民党が改憲の手始めに着手するといわれている「緊急事態条項」が頭によぎった方も多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条項の問題点については、こちら)。また、機動隊に殴られたという恐怖は、沖縄・辺野古新基地に反対するゲート前で起きていることにも重なります。国境を越えて、私たちはいま同じ問題に直面しているよう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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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イェダ(LEE Yeada)1991年韓国・仁川生まれ。17歳の頃から韓国社会に疑問を持ち、集会などに時々参加。韓国の専門学校で日本語を学んだ後、2012年、入隊2ヶ月前に単独でフランスに亡命し徴兵拒否。ベーグル職人を経て、現在はフランスでの就学を目指している。パリ郊外に居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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